[인터뷰] 과학기술 ‘가짜 연구’ 걸러낼 안전한 포상제 시도합니다






동그라미재단 이사장 최성호 교수 인터뷰

최근 과학기술·교육계에서 연구자들의 가짜학회 참석, 가짜논문 발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지난 8월 <뉴스타파> 보도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실태조사에 나섰고, 최근 5년 동안 교수·연구원 등 1317명이 가짜 학술단체인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에 참가한 사실이 확인됐다. 아무런 검증도 받지 않은 실적쌓기용 논문을 발표하는 가짜 학술대회 참석은, 상당 부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받아 이뤄졌다. 내년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한다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과 관련한 추문은 이 뿐이 아니다. 연구개발비 유용이나 착복 소식도 끊이지 않고, 반대편에서는 연구비 정산 등 서류 작업에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최근 동그라미재단(옛 안철수재단)에서 도입한 ‘프라이즈(상금) 플랫폼’은 성공한 연구개발을 대상으로 총 13억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가짜 연구’를 걸러내는 안전한 대안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재단 이사장인 최성호 경기대 교수는 지난 2일 인터뷰에서 “프라이즈 플랫폼은 역사적으로 오래됐을 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 매우 활발한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국가 연구개발비 20조원 예상 
가짜학회·가짜논문·유용·착복… 
학계 잇따른 추문으로 ‘효용성’ 의문


‘프라이즈 플랫폼 방식’ 국내 첫 도입 
상금 걸고 ‘성공한 연구개발’ 선정해 
1단계 233개 제안서…총 13억원 지원


-연구개발 공모에 얼마나 응모했나? 

“지난달 15일까지 두달 동안 ‘정보안전’, ‘미세먼지’, ‘자유제안’ 세가지 테마에 233개 제안서가 접수됐다. 국민 안전이나 보건 문제를 정보기술(IT)로 해결하자는 등 돋보이는 아이디어들이 꽤 있었다.”

-성공한 연구개발에 상금을 주는 플랫폼을 착안한 계기가 있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성이 큰 기초과학이나 원천기술 등은 정부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지원하는 (현재와 같은) 보조금제도가 여전히 긴요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한계와 허점도 많다. 2016년 이후 연평균 6조원씩이 투입되는 신성장동력 사업들만 해도, 서류상 성공일 뿐 실질적 효과는 논문 몇편이나 특허 몇건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 미국 등에서 이미 개발자 범위를 넓히고, 비용 대비 효과가 큰 프라이즈 플랫폼이 꽤 자리를 잡았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어떤 게 있나?

“1995년 창립된 민간재단 엑스프라이즈는 1천만달러 이상 상금을 내걸고 우주, 환경, 에너지 등 거대 과학기술 개발 과제를 제시해왔다. 그 결과 정부기관만 담당할 수 있다고 여겨왔던 우주비행 연구 영역이 민간으로 확장됐다. 우리 ‘오-프라이즈’ 공모전은 엑스프라이즈재단을 벤치마킹했지만,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한국형 프라이즈 플랫폼’을 지향한다. 문제 의식과 해결 아이디어가 있는 누구에게나 도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발하고 다양한 생각들이 나오고, 예기치 못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미국 사례를 곧바로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나? 

“인센티브 상금제는 수백년 전부터 활용됐다. 1927년 린드버그가 성공한 대서양 최초 비행횡단은 2만5천달러 상금이 걸려 있었는데, 9개 팀이 도전하면서 상금의 16배가 넘는 40만달러가 투입됐다. 가까이는 넷플릭스가 2006년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공모하며 상금 100만달러를 걸었는데, 186개 나라에서 5만5천명이 응모했다. 엑스프라이즈재단은 휘발유 1갤런(3.8ℓ)으로 100마일(160㎞) 연비 달성에 1천만달러 상금을 걸었는데, 130여개 팀이 경쟁해 3개 팀이 102.5~187.5마일 기록을 달성해 상금을 나눠 갖기도 했다. 맥킨지컨설팅은 2008년에 전 세계 10만달러 이상 프라이즈만 합해도 3억7천만달러 규모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프라이즈 플랫폼이 확산된 이유는 뭔가?

“엑스프라이즈재단의 첫 성과인 재사용 가능 우주선 발사에는 경쟁과정에서 상금의 10배인 1억달러가 투입됐고, 2004년 상금이 수여되자마자 사업화가 추진되며 15억달러 이상의 투자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성공에 자극받아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25만달러 수준이었던 프라이즈 사업 규모를 2016년엔 국방부, 에너지부, 항공우주국, 국가과학재단, 국립보건원 등을 중심으로 3천만달러 수준으로 키웠다. 모든 정부기관이 프라이즈 경쟁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통과됐고, 2015년에만도 35개 정부기관이 134개 프라이즈 제도를 시행했다.”

-현재 동그라미재단에서 진행 중인 아이디어 공모는, 그런 실제 연구개발 사례들과 다르지 않나?

“올해 1단계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해결과제가 선정되면, 올해 말부터 약 1년 동안 솔루션 공모가 진행된다. 또 개발된 솔루션을 사회적 투자나 민간·공공협력을 통해 실행·확산시키는 3단계까지 연계한 장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아이디어 공모를 통과한 15개팀(3개 테마별 5개팀)에는 1등 2천만원 등 7천만원을, 솔루션 단계에서는 테마별로 4억500만원씩 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프라이즈 플랫폼 활성화를 통해 꿈꾸는 장기적 비전은 무엇인가?

“저렴한 임금이나 대규모 자본 투자에 의한 가격경쟁력·수출 중심으로 성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는 기술혁신, 인재양성과 제도개혁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성장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원활하게 사업화될 수 있는 창업·기업성장 생태계 구축이 필요한데, 여기에 프라이즈 플랫폼을 통한 혁신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